내일이 남조선해방전략당 권재혁 선생 42주기 날입니다
- 이일재 선생의 회고 -남조선해방전략당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cool&id=38124&page=1&s2=subject&s_arg=권재혁
- 선생님은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구속돼서 권재혁 선생님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서, 20년 옥살이를 했습니다. 선생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조선해방전략당’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자주화를 위한 재건운동, 노동운동을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방향인데 노동조합운동은 한국노총 내에, 복선을 깐다, 그러면서 복선을 까는 주체가 있어야 된다, 이런 것 하고, 그 다음에 둘째가 있는데 인혁당하고 관계된 사람들하고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전위정당을 만든다, 그러면 노동계급이 중심이 되겠지만, 또 다른 노동세력도 규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아주 그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혁명세력들이 서로 모른다, 서로 정보도 없고 교환도 없다, 이걸 어떻게 해서 알아내고 서로 연결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거예요.
그래서 일종의 전국적인 정보센터 역할을 우리가 담당하자, 그래서 남조선 해방을 위한 전체적인 전략을 짜는 테제를 만들자, 해서 1964년부터 준비를 했어. 68년 1월 ‘남조선해방전략론’이란 문건을 완성했는데, 그해 논문이 압수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체포가 됐어. 체포계기는 정종소라는 사람이 통혁당 관계하다가 우리하고 교류를 하다 중간에 어떻게 복잡한 일이 생겼어. 그래서 중정(중앙정보부)에 의해 사건이 조작된 거야. 그것이 68년 소위 ‘남조선민족해방전략당’ 사건이야. 북한의 당과 정부에 추종하는 노선에 따라 반국가 단체를 구성하고 내란을 예비음모하고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것은 완전히 왜곡, 조작, 날조된 거야.
중정이 자기네들 마음대로 조작하고 마음대로 형랑 때려 버리대. 군사독재시절 조작이 우리만 아니라 인혁당, 통혁당 등 많았잖아. 체포 당시에 국가보안법 1조 1항 및 2항 위반이야. 반국가단체 구성 및 내란예비음모. 1심에서 사형 받고, 2심에서 무기를 받았어.
무기형이 억울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전에 시대상황이 너무 절박했어. 그때는 1심에서 죽는구나 하다가 2심에서 무기로 떨어지니까 이제는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 무기가 되니까 산다는 게 이래 좋은 거구나 싶을 정도였어. 인혁당 사람들이 재판이랄 것도 없는 요식행위로 하루 만에 전격 사형 당하던 시대였으니,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이고 고마울 정도였지.
전향 공작 때문에 나는 옥 안 철창에 부딪혀 자살을 기도했는데, 당시 뇌가 좀 상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한 일 년 고생했어. 내가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할 때 우리 사건의 주범으로 몰렸던 권재 혁 선생이 1969년 11월 4일 사형을 당했어. 억울하게 죽은 그를 기리고자 요즘도 그날만 되면 하루 단식을 하고 그러지.
- 언론에는 통혁당 조총련 하부조직으로 나와 있던데 사실입니까?
아니야. 완전히 조작됐어. 내 선배들이 북으로 올라가서, 미제의 프락치로 사형 당했는데, 우린 북한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이었어.
그러면, 남조선해방전략당과 통혁당의 통합논의가 있었습니까?
아냐, 통합논의는 없었어. 권재혁 선생이 가끔 통혁당 지도부 책임자 김종태를 만난 적은 있었던 것 같아. 김종태는 나도 잘 아는데 생각이 달라.
- 통혁당과 비교해서, 남조선해방전략당 규모는 어떠했습니까?
통혁당이 학생, 지식인 인텔리 중심이라면, 남조선해방전략당은 노동현장에 오르그(조직가)를 중심으로 했었지. 통혁당보다 남조선해방전략당이 훨씬 많았어. 그리고 그때 내가 노학연대를 주장했지. 노동계급이 혁명의 중심세력이야, 그런데 한국의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권력의 집중적인 탄압에 의해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보다 더 수월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노학연대를 해야 되고 학생 중심들이 현장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투쟁하고 결합한다, 그걸 강조했지.
- 선생님, 그러면 남조선해방전략당은 이후 어떻게 됐습니까?
권재혁, 이강복, 나 이렇게 지도부 13명이 구속되고 나니까, 조직이 와해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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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한의 계급투쟁이 치열합니다. 혁명의 파고가 높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먼저 가신 선배들의 해방투쟁에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기꺼이 혁명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남조선해방전략당 권재혁 선생 42주기에 우리의 현재를 생각합니다. 선배들의 뒤를 이어 우리도 기꺼이 혁명의 제단에 함께 합시다.
혁명만세!!!
2010년 11월 3일 저녁
임채희
이일재 선생의 회고
남조선해방전략당
- 선생님은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구속돼서 권재혁 선생님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서, 20년 옥살이를 했습니다. 선생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조선해방전략당’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자주화를 위한 재건운동, 노동운동을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방향인데 노동조합운동은 한국노총 내에, 복선을 깐다, 그러면서 복선을 까는 주체가 있어야 된다, 이런 것 하고, 그 다음에 둘째가 있는데 인혁당하고 관계된 사람들하고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전위정당을 만든다, 그러면 노동계급이 중심이 되겠지만, 또 다른 노동세력도 규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아주 그 극심한 탄압 속에서, 전국에 산재해 있는 혁명세력들이 서로 모른다, 서로 정보도 없고 교환도 없다, 이걸 어떻게 해서 알아내고 서로 연결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거예요.
그래서 일종의 전국적인 정보센터 역할을 우리가 담당하자, 그래서 남조선 해방을 위한 전체적인 전략을 짜는 테제를 만들자, 해서 1964년부터 준비를 했어. 68년 1월 ‘남조선해방전략론’이란 문건을 완성했는데, 그해 논문이 압수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다시 체포가 됐어. 체포계기는 정종소라는 사람이 통혁당 관계하다가 우리하고 교류를 하다 중간에 어떻게 복잡한 일이 생겼어. 그래서 중정(중앙정보부)에 의해 사건이 조작된 거야. 그것이 68년 소위 ‘남조선민족해방전략당’ 사건이야. 북한의 당과 정부에 추종하는 노선에 따라 반국가 단체를 구성하고 내란을 예비음모하고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것은 완전히 왜곡, 조작, 날조된 거야.
중정이 자기네들 마음대로 조작하고 마음대로 형랑 때려 버리대. 군사독재시절 조작이 우리만 아니라 인혁당, 통혁당 등 많았잖아. 체포 당시에 국가보안법 1조 1항 및 2항 위반이야. 반국가단체 구성 및 내란예비음모. 1심에서 사형 받고, 2심에서 무기를 받았어.
무기형이 억울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전에 시대상황이 너무 절박했어. 그때는 1심에서 죽는구나 하다가 2심에서 무기로 떨어지니까 이제는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구. 무기가 되니까 산다는 게 이래 좋은 거구나 싶을 정도였어. 인혁당 사람들이 재판이랄 것도 없는 요식행위로 하루 만에 전격 사형 당하던 시대였으니,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이고 고마울 정도였지.
전향 공작 때문에 나는 옥 안 철창에 부딪혀 자살을 기도했는데, 당시 뇌가 좀 상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한 일 년 고생했어. 내가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할 때 우리 사건의 주범으로 몰렸던 권재 혁 선생이 1969년 11월 4일 사형을 당했어. 억울하게 죽은 그를 기리고자 요즘도 그날만 되면 하루 단식을 하고 그러지.
- 언론에는 통혁당 조총련 하부조직으로 나와 있던데 사실입니까?
아니야. 완전히 조작됐어. 내 선배들이 북으로 올라가서, 미제의 프락치로 사형 당했는데, 우린 북한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이었어.
- 그러면, 남조선해방전략당과 통혁당의 통합논의가 있었습니까?
아냐, 통합논의는 없었어. 권재혁 선생이 가끔 통혁당 지도부 책임자 김종태를 만난 적은 있었던 것 같아. 김종태는 나도 잘 아는데 생각이 달라.
- 통혁당과 비교해서, 남조선해방전략당 규모는 어떠했습니까?
통혁당이 학생, 지식인 인텔리 중심이라면, 남조선해방전략당은 노동현장에 오르그(조직가)를 중심으로 했었지. 통혁당보다 남조선해방전략당이 훨씬 많았어. 그리고 그때 내가 노학연대를 주장했지. 노동계급이 혁명의 중심세력이야, 그런데 한국의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권력의 집중적인 탄압에 의해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보다 더 수월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노학연대를 해야 되고 학생 중심들이 현장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투쟁하고 결합한다, 그걸 강조했지.
- 선생님, 그러면 남조선해방전략당은 이후 어떻게 됐습니까?
권재혁, 이강복, 나 이렇게 지도부 13명이 구속되고 나니까, 조직이 와해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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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한의 계급투쟁이 치열합니다. 혁명의 파고가 높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먼저 가신 선배들의 해방투쟁에서 많이 배워야 합니다. 기꺼이 혁명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남조선해방전략당 권재혁 선생 42주기에 우리의 현재를 생각합니다. 선배들의 뒤를 이어 우리도 기꺼이 혁명의 제단에 함께 합시다.
혁명만세!!!
2010년 11월 3일 저녁
임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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